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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4/24 20:02

새벽

그날 새벽은 유난히 고요했다. 창밖엔 아직 빛이 들지 않았고, 도시의 소음도 완전히 가라앉은 시간. 나는 일부러 불을 다 켜지 않았다. 은은하게 남겨둔 조명 하나, 그리고 천천히 퍼지는 향기. 이 공간에 들어오는 순간, 감각이 바깥과는 다르게 흐르도록. 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이미 와 있었다. 조용히 앉아 있었지만 내가 들어오는 순간, 아주 미세하게 시선이 흔들렸다. 나는 그 반응이 좋다. 말보다 먼저 드러나는 것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시 서 있었다. 공기와 온도, 그리고 그녀의 긴장까지 한 번에 느끼듯이. 향기가 천천히 둘 사이를 채운다. 익숙한 향인데도, 이런 시간대에서는 전혀 다르게 작용한다. “늦지 않았네.” 낮게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였다. 목소리는 없지만, 이미 리듬이 맞춰지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갔다. 일부러 발소리를 숨기지 않는다. 그 소리 하나에도 신경이 쏠리게 만드는 게 중요하니까. 그녀 앞에 멈춰 서서, 잠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 짧은 정적 속에서 그녀의 호흡이 조금씩 얕아지는 게 느껴진다. 손을 뻗는다. 하지만 닿지 않게. 그 사이의 거리 그게 오히려 더 크게 작용한다.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 손끝을 따라온다. “지금, 생각이 많지?” 조용히 묻자, 그녀는 잠깐 망설이다가 아주 작게 숨을 내쉰다. 그게 대답이였다. 나는 손을 내리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선다. 향기가 더 짙어지는 거리. 이 공간, 이 시간, 그리고 이 흐름 모두 내가 만들어 놓은 것들이다. 그래서 더 선명하다. “괜찮아. 여기선 굳이 버티지 않아도 돼.” 그 말이 떨어지자 그녀의 어깨에서 힘이 아주 미세하게 빠진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어디까지 와 있는지 알 수 있는 그 지점. 나는 잠시 눈을 맞춘 채 멈춘다. “지금… 내가 느껴지니?” 이번에는 그녀가 바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조금 더 깊게, 조금 더 오래 그대로 마주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밖은 여전히 어둡고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시간. 하지만 이 안에서는 이미 무언가가 시작된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이제 막 시작되려는 순간일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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