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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4/11 01:43

#4

난 불안 증세 중 하나인 유기불안을 갖고 있다. 이 말은 스스로를 규정하거나 병명처럼 붙이기 위한 표현은 아니다. 정신과에 가야 할 질병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다만 관계 안에서 내가 어떤 지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언어에 가깝다. 그동안 나를 돌아보며 정리해온 생각들을 기준으로 보면, 유기불안은 내 성향과 관계 방식 속에서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나던 감정 반응이었다. 유기불안은 버려질 것에 대한 공포라기보다는, 관계의 연결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감각에 가깝다. 상대가 사라지거나 떠난다는 확정된 사실이 없어도, 연락의 온도나 말투의 변화, 이전과 다른 거리감만으로도 마음이 먼저 긴장 상태에 들어간다. 이때 드는 불안은 이성적인 판단 이전에 반사적으로 올라오며, 관계 자체를 의심하기보다 ‘내가 불필요해진 건 아닐까’라는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이 유기불안은 내가 데미섹슈얼이자 로맨스 성향이라는 점과도 맞물려 있다. 나는 감정이 깊어질수록 관계에 기대는 정도도 함께 커지는 편이다. 신뢰가 쌓인 관계에서는 안정감을 느끼지만, 그 안정이 흔들린다고 느껴지는 순간 불안 역시 빠르게 증폭된다. 그래서 나는 즉흥적이고 온도가 급변하는 관계보다는,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태도를 보이는 관계에서 훨씬 편안하다. 나에게 안정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중요한 점은, 이 불안이 항상 겉으로 드러나는 방식으로 표현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상대를 통제하거나 확인을 반복하는 방식보다는, 오히려 감정을 눌러두고 혼자 정리하려는 쪽에 가깝다. 괜히 예민한 사람으로 보일까, 부담을 주는 존재가 될까 스스로를 검열하며 한 발 물러서는 경우도 많다. 그 결과 불안은 사라지기보다는 안쪽으로 쌓이고, 때로는 관계와 거리까지 함께 벌어지게 된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에게 내린 결론은 단순하다. 유기불안을 없애야 할 결함으로 보지 않기로 했다. 대신 이 불안이 언제, 어떤 조건에서 올라오는지를 인식하고 관리하는 쪽을 선택했다. 불안을 자극하는 건 ‘관계 자체’가 아니라 ‘불확실성’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고, 나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감정 소비가 아니라 더 명확한 소통과 합의라는 것도 분명해졌다. 나는 여전히 유기불안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불안에 끌려다니기보다는, 불안이 생겼다는 사실을 하나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관계가 위험하다는 경고가 아니라, 내가 안정감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알림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조용하지만 지속 가능한 관계, 감정을 맡겨도 무너지지 않는 구조를 원한다. 선택에 대한 변명도, 정당화도 아니다. 그저 내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느끼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솔직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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