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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10 12:10

오늘만 대나무숲처럼 하루만 빌릴게요

좀 이런저런게 갑자기 훅 덮쳐서 조금 기분이 그래서 그냥.. 저번에 올리다만 글 마저 올리고 오늘은 조금 있어볼려고 합니다 저는 괜찮으니까요 연락 안주셔도 됩니다!!!!! 진짜예요 진짜진짜 안줘도 됩니다 마음만 받을게요 🙇‍♀️ 혹시나 뒤로가기 누르실 분들을 위해 요약하자면 전 아빠가 없습니다. 돌아가셨거든요. 근데 저에게 아빠는 너무 정신적으로 많이 지지를 했었어서 많이 힘들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적은 글 입니다. 읽기 불편할 것 같다고 생각하신 분들은 빠르게 뒤로가기 해주시면 됩니다. 오늘은 조금이라도 덜 힘들고 행복하게 마무리 할 수 있는 밤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작- 시간이 지날수록 우울은 나였고, 나는 우울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결국 나는 그 무엇도 이겨낼 수 없었다. 아무것도. 이 우울은 점점 커져갔고, 어느샌가 삶을 사는 게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우울은 나의 삶을 앗아갔다. 천천하지만, 강하게. 모든 것이 지루하다고 느꼈던 어느 날, 햇살같이 너무 밝은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무채색만 가득했던 나의 세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런 밝은 아이였다. 문득 그 아이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면적으로는 망가진 몸이었지만, 외면적으로라도 남들에게는 피해를 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기에 나는 다정하고, 햇살 같은 아이처럼 되고 싶어 했다. 영원히 빛이 나는 줄 알았던 그 아이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우울에 벗어나고 있었고, 예민함도 벗어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남들처럼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무채색만 가득한 이 삶 속에서 나도 남들처럼 다양한 색을 가질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그런 착각은 점점 확신으로 변해갔고, 나는 점점 더 우울과 예민에 벗어나게 되었다. 아 얼마 만의 이런 세상인 것인가. 정말 세상에는 이렇게까지 다양한 감정과 사소한 행복이 있었다. 자유로웠다. 새가 된 것 같았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기에 그들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었기 때문이다. 나처럼 인간을 증오하지 않고, 나처럼 우울과 예민에 잠식하지 않았으면 좋겠었었기에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감정에 공감을 해주며 나의 이야기를 말하면서 위로를 해주었다. 위선자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오직 그들이 조금이라도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함을 느낄 수만 있다면 난 그걸로 만족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진 말이다. 떠난 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었어도 아직도 그리운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잃기 전까진 나는 모든 것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나의 유일한 휴식처이자 내가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대고 있던 사람이었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지 나를 향해 헌신해 주던 사람이었다. 너무 다정한 사람이었다. 너무 순수한 사람이었다. 내가 너무 사랑한 사람이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기에 너무 힘들었다. 단순히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면서 웃으며 들어간 그는 결국 아무렇지 않게 조용하게 떠났다.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이었다. 언젠간 인간은 죽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이렇게 급하게 내 곁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2022년 10월 5일. 아빠가 떠났다. 앞으로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니 부정했다. 벌써 내 곁을 떠날 리가 없다고. 아직도 눈만 뜨면 "아빠 딸 일어났어?"라면서 나를 향해 웃고 있는 표정이 생생한데 벌써 떠날 리가 없었다. 내 결혼식에서 손잡고 같이 입장할 것이기에 건강하게 살 것이라고 다짐했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 사람이 떠난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엄마의 전화를 받고 애써 부정하면서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땐,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있었다. 안 떠난다며. 내 옆에 계속 있겠다며. 왜 떠난 건데. 내 결혼식 때까지 건강하게 살 거라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며. 사랑해. 사랑한다고. 왜 떠난 건데. 가지 마. 내 옆에 있어줘. 사랑한다고도 말할게. 제발 날 떠나지 마 아빠.라는 말들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너무 위태로워 보였다. 가장 강인하다고 느낀 사람이었는데, 너무나도 작은,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많이 사랑하는 연인을 떠난 한 평범한 사람의 슬픔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사실 계속 부정하고 있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애써 부정하면서 마지막으로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 눈물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 믿고 싶지 않았던 현실이 일어난 것이다. 이젠 꿈에서 일어날 시간이라고 말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곱게 입은 한복과,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평온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이었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고, 화장을 하고, 분양실에 안착했다. 언제나 안겼을 때 내가 가려질 정도였던 그는 내가 그를 가릴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재가 되어버렸다. 살면서 처음 겪는 이별에 슬픔도 잠시,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날은 유독 모든 것에 지쳐있었다. 너무나도 우울했다. 다시 그 늪에 빠진 것 같았다. 유독 그날만 그랬다. 지쳐있는 상태로 집에 돌아오니, 막상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아빠가 없다는 것을 실감 나니 눈물이 계속 흘렀다. 끝도 없이, 계속. 처음으로 소리 내서 울어보았다. 그래봤자 작은 흐느낌이었다. 애써 부정하고 있었던 현실을 직시하고 계속 울었다. 이대로 내 안에 있는 수분이 빠져나갔으면 좋겠을 정도로 계속해서 울었다. 그렇게 울고 나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아니, 바다에 둥둥 떠있는 듯한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혼자 조용히 둥둥 떠있는 것 같았다. 아 나는 앞으로 영원히 이 사람을 기억하겠구나. 끝도 없는 우울이다. 안녕 아빠. 내가 많이 보고 싶어. 이젠 10월만 되면 기분이 우울해진다. 잔잔했던 바다가 나를 끌어당겨 깊은 심해로 이끄는 기분이었다. 무엇을 해도 이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고, 난 평온한 심해에 눈을 감았다. 어느새 난 대학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이 되었고, 부담감을 갖고 있었다. 사실은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저 조용히 이 삶을 살고 싶은 것뿐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하지만 평온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다른 수험생들처럼 대학이라는 것에 치열하게 달리고 있었다. 아무리 달려도 끝은 보이지 않았고, 지치기만 했다. 지쳤다기보단 지루했고, 예민했다. 예전에 떨친 예민이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결국 나는 예민과 우울을 끝내 이기지 못했다. 그것들은 나의 뇌와 심장에 구멍을 냈고, 점점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힘들어도 힘들지 않다는 착각을 주었고, 배가 고파도 고프지 않다는 착각을 주었다. 참 끝없는 괴로움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겨내고 싶진 않았다. 이겨낼 힘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었고, 무료함의 시작이었다. 전공을 배워도 흥미는 없었고, 동기들과의 만남도 지루했다. 어차피 배워도 결국은 누군가와의 경쟁을 또 한 번 해야 하는데, 배우고 싶지 않았다. 허무했다. 공허했다. 또다시 무채색의 삶을 살게 되었다. 결국 난 우울이 되었고, 우울은 내가 되었다. 우울해지니 감각은 예민해졌고 예민해지니 모든 것이 허무하게 되었다. 식욕도 없고, 감정도 없고, 모든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았고, 공허함만 남게 되었다. 결국 난 이 우울과 예민과 허무함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그럴 것이다. 결국 우울은 나였고, 나는 우울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의 10대는 우울과 예민과 공허의 집합체인 인간으로 마무리 하게 되었다. 더이상 심해 같은 우울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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