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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30 02:40
장면 관찰 [목록들]
1. 방 안에는 창문이 하나 있다. 창문은 북쪽을 향해 있어서 직사광선이 들지 않는다. 회색빛 하늘이 사각형으로 잘려 있다. 창틀은 흰색이다.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다. 침대가 있다. 침대는 철제 프레임이다. 매트리스는 단단하다. 시트는 흰색이다. 구겨져 있다. 책상이 있다. 책상 위에는 물잔이 있다. 물은 반쯤 차 있다. 유리컵 표면에 물방울이 맺혀 있다. 의자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책상 앞에, 하나는 벽 쪽에. 옷장이 있다. 옷장 문은 닫혀 있다. 2.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다. 벽 쪽 의자다. 등을 기댄 채로. 손은 무릎 위에 얹혀 있다. 손가락이 가늘다. 손톱이 깨끗하다. 여자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다. 침대와 책상 사이, 정확히 방의 중앙이다. 머리는 숙여져 있다. 긴 머리카락이 어깨를 덮고 있다. 검은색이다. 남자가 말한다. 여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천천히. 3. 시간이 흐른다. 방 안의 공기가 무겁다. 습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그저 무겁다. 움직이지 않는 공기. 정지한 공기. 남자의 시선이 여자에게 닿아 있다. 여자는 그것을 느낀다. 피부로 느낀다. 시선의 무게. 시선의 온도. 여자의 손이 바닥에 펼쳐져 있다. 손바닥이 차가운 마루에 닿아 있다. 나무의 결이 느껴진다. 차가움이 손목으로, 팔로, 어깨로 전해진다. 4. 남자가 일어선다. 의자가 삐걱거린다. 발소리. 다섯 걸음. 여자 앞에 선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천천히. 정수리에서 뒤통수로. 목덜미까지.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진다. 여자가 몸을 떤다. 미세하게. 남자가 묻는다. 괜찮은가. 여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더 확실하게. 5. 남자의 손이 여자의 턱을 들어올린다. 여자의 얼굴이 위를 향한다. 눈이 마주친다. 여자의 눈이 촉촉하다. 눈물이 아니다. 그저 촉촉하다. 눈동자가 검다. 깊다. 남자가 말한다. 아름답다고. 여자가 눈을 감는다. 길게. 남자의 엄지손가락이 여자의 아래 입술을 누른다. 부드럽게. 입술이 벌어진다. 치아가 보인다. 혀가 보인다. 6. 남자가 다시 앉는다. 원래 자리로. 등을 기대고. 손을 무릎에 얹고. 여자가 그대로 있다.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숙인 채로. 하지만 무언가 달라졌다. 어깨의 긴장이 풀렸다. 호흡이 깊어졌다. 시간이 흐른다. 또다시. 방 안에 말이 필요 없다. 침묵이 말보다 많은 것을 전한다. 침묵이 둘 사이를 채운다. 무게가 있는 침묵. 색깔이 있는 침묵. 7. 남자가 말한다. 일어나도 좋다고. 여자가 천천히 일어선다. 무릎이 뻣뻣하다. 다리가 떨린다. 남자가 손을 내민다. 여자가 그 손을 잡는다. 남자가 여자를 침대로 이끈다. 여자를 앉힌다. 옆에 앉는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다. 어깨가 닿을 듯 말 듯. 8. 남자가 물을 가져온다. 책상 위의 물잔. 여자에게 건넨다. 여자가 마신다. 천천히.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간다. 차갑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등을 쓰다듬는다. 원을 그리며. 규칙적으로. 여자가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무게를 맡긴다. 남자가 받아준다. 9. 창밖의 하늘이 조금 밝아진다. 구름이 흩어진다. 빛이 들어온다. 회색이 아닌 빛. 희미한 노란색. 방 안의 공기가 달라진다. 여전히 무겁지만 다른 무게. 짓누르는 무게가 아니라 감싸는 무게.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는다. 손가락을 깍지 낀다. 여자가 말한다. 고맙다고.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10. 방 안의 두 사람. 한 사람은 주었다. 다른 한 사람은 받았다. 한 사람은 이끌었다. 다른 한 사람은 따랐다. 한 사람은 말했다. 다른 한 사람은 들었다. 하지만 누가 더 많이 받았는가. 누가 더 많이 주었는가. 여자는 복종하며 자유로웠다. 남자는 지배하며 돌보았다. 여자는 무릎 꿇으며 존엄했다. 남자는 명령하며 경청했다. 11. 그들이 나누는 것은 고통이 아니었다. 쾌락도 아니었다. 그것은 신뢰였다.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신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내어주는 것. 그것을 받는 사람이 최선을 다해 지켜주는 것. 그것은 언어였다. 말로 하지 않는 언어. 몸으로 하는 대화. 눈빛으로 하는 질문과 대답. 손길로 하는 위로와 약속. 그것은 의식이었다. 일상을 벗어나는 시간. 역할을 입는 시간. 가면을 쓰는 시간. 하지만 그 가면 뒤에서 더 진실해지는 시간. 12. 두 사람이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다. 천장을 본다.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다. 흰색 천장. 조명 하나. 여자가 말한다. 저 천장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남자가 말한다. 다른 방. 다른 사람들. 다른 이야기들. 여자가 말한다. 그들도 우리처럼 서로를 이해할까. 남자가 말한다. 모르겠다. 어쩌면 각자의 방식으로. 13. 밤이 온다. 방이 어두워진다. 남자가 일어나 불을 켠다. 부드러운 빛. 주황색 빛. 여자가 일어나 옷을 입는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남자가 문 쪽으로 간다. 문을 연다. 바깥의 공기가 들어온다. 여자가 문 앞에 선다. 남자를 본다. 남자가 여자를 본다. 그들은 안다. 이 방 안에서 일어난 일은 이 방 안에만 머문다는 것을. 문을 나서면 그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하지만 무언가는 달라졌다는 것을. 여자가 남자에게 키스한다. 이마에. 부드럽게. 남자가 여자를 안는다. 꽉. 그리고 놓아준다. 여자가 나간다. 복도로. 계단으로. 세상으로. 남자가 문을 닫는다. 천천히. 14. 빈 방. 침대. 의자. 책상. 옷장. 창문. 물잔. 반쯤 비어 있다. 바닥. 무릎이 닿았던 자리에 희미한 온기. 공기. 여전히 무겁다. 하지만 다른 무게. 방은 기억한다. 방 안의 모든 것이 기억한다. 주고받은 신뢰를. 나눈 침묵을. 교환한 존엄을.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는 방. 그 방에서 우리는 가장 연약하고 가장 진실하다. 때로 우리는 누군가를 그 방에 들인다. 완전한 신뢰로.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역설을 배운다. 복종이 자유가 될 수 있다는 것. 지배가 돌봄이 될 수 있다는 것. 무릎 꿇는 것이 존엄할 수 있다는 것. 명령하는 것이 경청할 수 있다는 것. 사랑의 형태는 하나가 아니다. 이해의 방식도 하나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것이다. 상대를 해치지 않으려는 세심함.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 상대에게 상처가 아닌 치유를 주려는 의지. 그것이 있다면, 어떤 방 안에서든, 아름다움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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