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장갑
25/11/25 15:06
고마웠어 내 어린밤들아
회복한다는 건 상처가 무뎌지기를, 아프지 않기를 바라면서 반복해서 겪어가는 거래. 가끔은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가 진실이었으면 하기를 바랄 때가 있었어. 어렸을 땐, 어른이란 게 참 멀어 보였는데. 막상 그렇게 말해야 하는 나이를 먹어가 보니 참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오히려 소란한 맘을 감추려고 잔꾀만 늘어날 뿐 도통, 무언가에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내게는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았어. 너도 그렇니, 우리도 시간이 지나다 보면 단순한 선택이라도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요즘 잠은 잘 자고 있어? 뒤척이는 밤이 괜찮아질 만큼 삶이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가끔 속으로 되뇌며, 기도했을 때가 있었어.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실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만히 지켜보는 것보단, 내가 뭐라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하면서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어, 알아주지 않아도 가시 돋인 마음을 안아줄 수 있다면 말이야. 많이 힘들지. 얼룩진 마음들을 들키지 않으려 애를 쓰니, 주위 환경은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고 말이야. 그럴 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낮고 고요하게 부서지는 마음들을 찬찬히 흘려보내야 할까. 우리 약속 하나 하자, 그렇게 흘려보내다, 남겨진 것들이 생기면 같이 널브러져 있자. 그러다 또 걸러진 것들에서 같이 우리의 언어를 만들자. 사랑이 아닌 단어로, 사랑을 말하듯, 남은 말들, 그 조각들로 우리가 다시 우리를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세상엔 말이야, 정말 다양한 언어들이 있대. 그리고 그 언어들 중 어떤 건, 그냥 눈빛 하나로도 통한다 하더라. 말보다 더 조용한 말, 울지 않아도 들켜버리는 울음 같은 것. 우리도 언젠가는 그런 언어를 가지게 될까. 서로 다르지만 이상하게 닮은 감정을 서툴게나마 나눌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요즘, 자주 멈춰 서게 돼. 예전엔 그런 나를 게으르다고 여겼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 서두르지 않고, 내 속도대로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회복이더라. 아마 너도 그럴 거야. 모두가 앞만 보고 달릴 때, 잠깐 뒤돌아본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니니까. 그렇게 잠시 멈춘 자리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건, 누군가와의 거리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얼마나 가까워졌는가 일지도 몰라. 그러니까 너도, 요즘의 너를 너무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시절 우리가 그렇게 애썼던 만큼, 지금의 우리도 꽤 괜찮게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자. 어설퍼도 좋으니, 우리가 우리에게 다정하게 대할 수 있기를. 고마웠어, 내 어린 밤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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